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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삶과 고독에 관한 고찰

by 모랩군 2023. 2. 6.

서부의 황량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영화

2007년 개봉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조엘 코엔 감독의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사실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도 미국 서부의 텍사스입니다. 사냥꾼 르웰린 모스는 마약 거래가 잘못된 현장에서 엄청난 거액의 돈이 담긴 가방을 발견합니다. 그는 돈에 눈이 멀어 돈가방을 가져가지만, 그가 훔쳐간 돈가방에는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 칩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곧 돈을 되찾기 위해 고용된 안톤 쉬거라는 이름의 무자비한 살인범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주인공인 르웰린 모스가 살인범 안톤 쉬거로부터 탈출하고 그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줄거리 속에서, 이 영화는 텍사스라는 거대한 무법지대를 배경으로 탐욕과 폭력, 그리고 도덕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 영화는 조용하고 긴장된 분위기와 잔인한 폭력성, 그리고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 작품으로 주목받았으며, 2008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색상 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악역 연기가 소름돋는 영화

이 영화에서는 정말 역대급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바로 스페인의 연기파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안톤 쉬거'입니다. 영화에서 체포되었지만 곧 보안관을 죽이고 탈출하여 한 가게에 들어간 안톤은 가게 주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동전을 던지며,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선택하라고 합니다. 다행히 주인은 동전 한 면을 선택해 죽지는 않았지만, 분명 동전을 잘못 골랐다면 죽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안톤의 살인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고, 악의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피해자는 우연한 선택에 따라서 죽게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안톤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이코패스로 보입니다. 덥수룩한 장발 밑으로 보이는 눈에는 아무 표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웃지도, 화내지도, 슬퍼하지도 않지만 다만 살인을 하기 직전 얼굴에 어렴풋이 미소가 보입니다. 어떤 마음의 동요 없이 그가 저지르는 살인에서 우리는 기존의 악역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다른 악역들과는 달리 그의 살인에는 분노와 욕망, 원망, 재미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우연에 따라, 원래 그렇게 되는 것이 맞는 것인 양 자연스럽게 범죄를 행합니다. 하지만 그는 살인에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게 주인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는 주인을 죽이고 싶지만 명분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동전 던지기를 통해 '우연'이라는 명분을 만들어 냅니다.

 

원작 소설과는 어떻게 다를까?

이 영화는 코맥 매카시의 소설을 각색해서 만든 만큼 소설과도 많은 비교가 되며 회자가 되는 영화입니다. 영화감독인 코엔 형제는 처음 영화촬영을 위해 이 소설을 본 뒤 '각색은 필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소설 내에서 다양한 영화적인 요소와 묘사가 충분하였기 때문에 굳이 각색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소설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르웰린과 안톤의 추격전 사이에 그 둘을 쫓고 있는 늙은 보안관인 벨의 독백입니다. 이 소설에서 노인으로 대변되는 벨의 독백은 이 소설의 주제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관통합니다. 젊지만 어리석은 주인공과 악마같은 존재, 그리고 노인. 이 세 분류의 존재는 결코 한 장면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쫓고 쫓기며 서로의 서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소설과 영화가 가장 다른 점은 등장인물에서도 나타납니다. 원작 소설에서 르웰린 모스는 죽기 직전에 한 소녀를 만나 차를 태워주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 때로는 따뜻한 충고와 함께, 때로는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해주는 모습은 과묵했던 르웰린 모스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소녀는 사실 굉장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영화 내에서는 대사 없이 과묵하게만 나오는 모스가 사실은 마음 한편에 따뜻함과 자상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혹시 영화를 보고 흥미를 느끼신 분이 계시다면, 꼭 원작 소설까지 비교해서 읽어보신다면 좋은 경험이 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